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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칼럼] 해외야구 : 최고팀의 충격적 비밀

작성일 : 2021.10.07 08:15 조회수 : 24089

OXQ 뉴스팀


이강민 기자 kkardinals@naver.com


충격적인 스캔들 下

- 블랙삭스 스캔들 -



 

스포츠 무대에선 용납될 수 없는 여러 가지 요소가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약물, 승부조작, 폭행 등이다. 프로 스포츠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프로 스포츠는 팬이 있기에 존재한다. 팬이 없으면 프로 스포츠의 존재 가치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 중 승부조작은 팬들을 기만하는 행위이며 동시에 스포츠 정신에 위배되는 행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승부조작은 용납할 수 없는 최악의 행동이다. 하지만 여기 팬들을 충격속에 빠뜨린 최악의 승부조작이 존재한다.

1919년 월드시리즈 무대, 모두가 최강 전력을 지닌 시카고 화이트 삭스의 우승을 점쳤다. 바로 이 최고의 무대에서 최악의 승부조작이 탄생했다. 이 사건을 블랙삭스 스캔들이라고 부른다.

[출처:https://thisgreatgame.com/1919-baseball-history/]

 

블랙삭스 스캔들이란 무엇인가?

 

1919년 월드시리즈 무대에서 시카고 화이트 삭스의 소속 선수들이 브로커에게 돈을 건네받는 조건으로 고의적으로 패배한 사건을 말한다. 추후 이 사건은 스포츠 승부조작의 씨앗이라고 불릴 정도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왜 이런 사건이 발생했을까?

 

당시 화이트 삭스는 ‘난공불락 너클볼러’ 에디 시콧, 그를 잇는 ‘리그 최고 좌완’ 레프티 윌리엄스, ‘맨발의 사나이’로 불렸던 ‘강타자’ 조 잭슨 등 스타플레이어들이 즐비한 라인업이었다. 모든 이들은 화이트 삭스의 전력이 월드시리즈 상대 팀 신시내티 레즈의 전력보다 앞선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 존재했다. 당시 화이트 삭스의 구단주는 에디 시콧 에게 30승 달성 시 1000만 달러라는 인센티브를 걸었다. 그런데 구단주는 에디 시콧 의 30승 달성이 가까워지자 잔여 경기에서 그를 의도적으로 제외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구단주의 짠돌이 같은 모습에 선수단은 큰 불만을 품고 있었다. 심지어 선수단에게 세탁비마저 걷으려는 모습에 선수들은 항명의 뜻으로 흙먼지 뒤집힌 유니폼을 빨지 않고 경기에 나선 적도 존재한다.

 

이런 선수단과 구단주의 마찰은 외부에도 알려졌다. 도박사들은 화이트 삭스의 선수들에게 접근하여 매 경기마다 수당을 제시하며 승부조작을 의뢰했고 구단주와 마찰이 있는 몇몇 선수들은 이에 응했다. 팀의 주장이자 최고의 1루수이던 칙 갠딜 은 구단이 지급하는 연봉에 대해 불만이 존재했고 그를 비롯하여 여덟 명의 선수승부조작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당시 월드시리즈는 9전 5선 승제였다. 월드 시리즈에서 패배하기 위해선 총 5번의 고의 패배가 필요했다. 에이스 에디 시콧 레프티 윌리엄스 는 2경기에서 총 13점을 실점하며 2번의 게임에서 2번의 패배를 달성했다. 이른바 역배에 성공한 도박사들은 얻은 돈의 일부를 수당으로써 승부조작에 가담한 선수들에게 분배하였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승부조작에 대해서 알지 못했던 신인 디키 커 선수는 3차전에 선발투수로 등판하여 인생 투구를 펼쳐 완봉승을 거둬 화이트 삭스에게 시리즈 첫 승을 건네줬다. 이를 예상하지 못하고 역시나 레즈에게 거액의 배팅을 한 도박사들은 하루아침에 큰돈을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선발투수로 등판한 에디 시콧 레프티 윌리엄스 원투 펀치는 4차전과 5차전에서 나란히 패배라는 임무에 충실하며 시리즈는 총 1승 4패가 되었다. 그러나 3차전에 거액을 잃어버린 도박사들은 선수단에게 수당을 더 이상 지급하지 않았고 선수단은 돈도 못 받고 월드시리즈도 패배할 거란 불안감 속에 6차전이 시작했다.

화이트 삭스는 팽팽한 승부 속 팀의 주장이자 승부조작에 응한 칙 갠딜 의 결승타로 6차전을 승리했다. 7차전에서는 마음을 다잡은 에이스 에디 시콧 이 호투하여 2연승을 거뒀다.

8차전 선발투수는 레프티 윌리엄스.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도박사들은 갱단을 동원하여 윌리엄스 의 집에 들어가 패배하지 않는다면 가족들을 살해한다는 협박을 하였다. 8차전이 시작되자마자 무기력한 볼을 던지는 레프티 윌리엄스 를 레즈 선수들은 놓치지 않았다. 1회에만 4점을 거두며 결국 10:5로 패배하여 화이트 삭스는 시리즈 마지막 패배에 이르렀다.

압도적인 선수들의 의도적인 무기력함을 눈치챈 기자들은 이를 승부조작을 의심하며 선수들을 집중 취재하였고 이는 결국 에디 시콧 의 자백을 이끌어냈다.

결국 1920년 화이트삭스 선수단은 승부조작에 연루되어 경찰 조사를 받게 되었다. 경찰의 조사를 받는 화이트삭스 선수들의 모습을 보며 대중은 충격에 빠졌다. 급격히 나빠진 여론 탓에 하루아침 구단이 없어질 위기에 처해지자 구단주는 당시 최고의 변호사를 선임했다. 변호사는 선수단의 변호를 성공적으로 마치며 선수단은 전부 무죄 판정을 받았다.

 

 

정의구현, 권선징악이 존재했을까? 이후 화이트 삭스는 ‘블랙삭스 저주’에 시달려 무려 40년 동안 월드시리즈 무대에 진출하지 못하였으며 월드시리즈 무대에서의 우승은 88년 만에 달성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MLB는 신뢰 회복을 위해 커미셔너라는 자리를 만들었으며 초대 커미셔너 케네소 랜디스 승부조작에 가담한 여덟 명의 선수를 전부 영구 제명 처리하였다.

[출처:https://sports.ha.com/itm/baseball-collectibles/publications/1920-chicago-black-sox-original-the-boston-post-newspaper/a/151132-42137.s]



 

어쩌면 20세기 초반 선수 인권이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존재하지 않던 시절 구단의 갑질에 시달렸던 선수들에게 도박사들의 목돈은 달콤한 유혹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세계 1차 대전이 발발 중이던 당시에는 미국 내 경마 금지령이 존재했다. 목돈을 위해 마땅한 도박판을 찾던 도박사들에게 매일 경기가 열리는 MLB는 좋은 먹잇감에 불과했다.

 

이 사건은 소설, 영화로써 다시 한번 대중 앞에 노출되고 있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블랙삭스 스캔들최악의 승부조작으로써 우리에게 영원히 남겨질 것이다.